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찍고 있었다
지연 시간이 왜 안 줄어드는지 보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습니다.
작업자들은 보고를 미루면서도 사진은 항상 그 자리에서 찍고 있었습니다. 시키지 않아도 찍었고, 필요 이상으로 많이 찍었습니다. 한 건에 평균 11장.
왜 찍냐고 물었습니다. 대답은 짧았습니다.
"나중에 말 나오면 이게 있어야죠."
손이 한 번만 가고, 무엇을 적을지 판단할 필요가 없고, 쓸모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압니다. 현장에서 유일하게 마찰이 없는 입력이었습니다.
파일명 규칙은 무너진다
처음에는 파일명 규칙을 정했습니다.
20260420_HJ-042_MH03_점검.jpg
날짜_현장코드_위치_작업유형.jpg
규칙을 문서로 만들고 교육도 했습니다. 두 주 만에 무너졌습니다.
젖은 손에 장갑을 낀 채로 파일명을 타이핑하라는 건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손이 한 번 더 가는 규칙은 지켜지지 않습니다. 의지가 아니라 물리적 조건의 문제입니다.
이미 들어 있는 것을 쓴다
사진 파일에는 촬영 시각과 GPS 좌표가 이미 들어 있습니다. 아무도 입력하지 않았는데 정확하고, 나중에 조작하기도 어렵습니다.
{
"DateTimeOriginal": "2026:04:20 11:07:33",
"GPSLatitude": 37.5041,
"GPSLongitude": 127.0248,
"Make": "samsung",
"Model": "SM-S928N"
}
그래서 규칙을 반대로 뒤집었습니다.
사진 촬영
이미 하던 행동
메타데이터 추출
시각 · 좌표
현장 추정
가장 가까운 등록 현장
확인 한 번
맞습니까? 예 / 변경
맞으면 확인 한 번. 아니면 목록에서 고릅니다. 조작이 한 번으로 끝납니다.
좌표가 배신한 곳
바로 문제가 생겼습니다.
지하 맨홀에서는 GPS가 잡히지 않거나 수십 미터씩 틀어졌습니다. 아파트 지하층에서는 아예 안 잡혔습니다. 하필 가장 자주 작업하는 장소들이었습니다.
정확도를 올리려 여러 방법을 시도했지만 물리적 한계였습니다. 그래서 정확한 판정을 포기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규칙 1 좌표가 유효하면 → 가장 가까운 등록 현장 제시
규칙 2 좌표가 없거나 오차가 크면 → 직전 사진의 현장을 이어받음
(직전 사진과 30분 이내인 경우에만)
규칙 3 둘 다 아니면 → 목록에서 직접 선택
하루에 현장을 옮기는 횟수는 보통 두세 번입니다. 규칙 2 덕분에 지하에서 찍은 사진도 대부분 자동으로 붙었습니다.
완벽한 자동 판정 대신 "대부분 맞고 가끔 고치는" 쪽을 택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잘한 결정이었습니다.
사진이 곧 보고가 됐다
사진을 올리면 시각·위치·현장·작업자가 자동으로 붙습니다. 작업자가 채우는 건 측정값과 특이사항뿐입니다.
지연 시간
저녁 입력이 사라짐
조작 횟수
목표 달성
저녁에 사무실에서 옮겨 적는 단계가 통째로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부수적으로 얻은 것
한 달쯤 지나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겼습니다.
클레임이 들어왔습니다. 특정 구간의 시공이 규격대로 안 됐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전에는 이런 게 오면 사람들이 각자 사진첩을 뒤졌습니다. 며칠이 걸렸고, 못 찾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현장을 열고 날짜를 눌렀습니다. 그날 그 자리에서 찍은 사진이 시간순으로 있었습니다. 3분이 걸렸습니다.
입력을 편하게 만들려고 한 일이 증거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배운 것
자동화할 지점을 고를 때는 사람들이 이미 하고 있는 행동을 찾는 게 빠릅니다.
새 습관을 만들게 하는 자동화는 대부분 실패합니다. 처음 몇 주는 되다가 바쁜 주가 오면 무너집니다. 이미 있는 습관에 올라타는 자동화는 살아남습니다. 지킬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요구사항 문서를 아무리 잘 써도, 현장에서 하루 따라다닌 것만 못했습니다.
다음 편에서 할 것
이제 남은 손입력은 측정값입니다. 그런데 그 값은 이미 장비 안에 파일로 존재합니다. 사람은 그걸 화면으로 읽어서 다른 화면에 옮기고 있을 뿐입니다.
옮겨 적는 구간을 없애면 오타도 같이 사라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