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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Fantasy Life9 min

끝맺지 못한 문장들의 도서관

끝내지 못한 것과 시작하지 않은 것은 다릅니다

그 도서관에는 완성된 책이 한 권도 없습니다. 쓰다 만 문장, 지워진 단락, 보내지 못한 편지만이 서가를 채웁니다. 사서는 말합니다. 여기서는 미완성이 곧 장서라고.

끝맺지 못한 문장들의 도서관
DMS / VISUAL ESSAY

도서관은 언덕 아래, 안개가 고이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문은 낮았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했습니다. 손잡이는 손때가 묻어 가운데만 반들거렸습니다.

문에는 안내가 붙어 있었습니다.

"완성된 책은 반입할 수 없습니다."

사서

안으로 들어가니 사서가 사다리 위에서 무언가를 꽂고 있었습니다.

얇았습니다. 책이라기보다 종이 몇 장을 실로 묶은 것에 가까웠습니다. 실 색이 제각각인 걸 보니 있는 걸 그때그때 쓴 모양이었습니다.

"오늘은 뭘 들여오셨어요?"

"열일곱 통이요."

사서가 사다리에서 내려왔습니다. 발이 바닥에 닿을 때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전부 보내지 못한 편지입니다. 이번 주에 들어온 것 중 제일 좋은 건 세 번째 줄에서 끊긴 거예요. '사실은 그때'까지 쓰고 멈췄더군요."

"그다음은요?"

"없습니다."

사서는 그 종이를 한 번 쓸어 폈습니다.

"그래서 좋은 겁니다."

서가

서가는 주제가 아니라 멈춘 이유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서가는 용기가 없어서 멈춘 것들이었습니다. 고백, 사과, 부탁. 대부분 짧았습니다. 한 장을 넘기지 못한 것도 많았습니다.

두 번째는 더 좋은 말이 떠오를 것 같아서 멈춘 것들.

여기가 가장 컸습니다. 천장까지 닿았고, 사다리를 옮겨야 위쪽에 닿을 수 있었습니다.

사서는 이 서가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제일 아까운 곳이에요. 다들 다음 주에 다시 오겠다고 하고는 안 옵니다."

세 번째는 중간에 마음이 바뀐 것들. 앞부분과 뒷부분의 목소리가 달라서, 읽으면 한 사람이 변해가는 게 보인다고 했습니다. 글씨가 바뀌는 것도 있고, 잉크 색이 바뀌는 것도 있다고요.

마지막 서가에는 아무 표시도 없었습니다.

"저기는요?"

"이유를 모르는 것들입니다. 쓰던 사람도 왜 멈췄는지 모르는 거죠."

사서가 잠깐 말을 멈췄습니다.

"제일 많이 대출됩니다."

대출

대출 규정도 이상했습니다. 빌릴 수는 있는데 이어 쓸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읽기만 하라는 건가요?"

"읽고, 자기 것을 하나 두고 가시면 됩니다. 완성하지 않은 걸로요."

창가 책상에 종이와 펜이 놓여 있었습니다. 펜은 오래 쓴 것이었습니다. 잡는 자리만 색이 벗겨져 있었습니다.

저는 한참 앉아 있었습니다.

한 줄을 썼습니다. 쓰다 보니 두 줄이 됐고, 세 줄째에서 어떻게 이어야 할지 몰라 멈췄습니다. 펜 끝이 종이에 닿은 채로 잠깐 있었고, 점이 하나 번졌습니다.

멈춘 자리를 보고 있으니 사서가 다가왔습니다.

"그거면 됩니다."

"이건 그냥 못 쓴 건데요."

"여기 있는 것 전부가 그렇습니다."

나오는 길에 물었습니다. 왜 완성된 책은 안 받느냐고요.

사서는 잠깐 생각하더니 이렇게 답했습니다.

"완성된 건 이미 자기 자리가 있으니까요. 서점에도 있고, 다른 도서관에도 있고, 누군가의 책장에도 있습니다."

"그런데요?"

"끝맺지 못한 건 어디에도 안 갑니다. 서랍에 있다가 버려지죠. 이사할 때 대부분 사라집니다."

"여기 있으면 뭐가 달라지나요?"

"달라지진 않습니다."

사서는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안개가 문틈으로 들어왔습니다.

"다만 있었다는 게 남습니다."

돌아오는 길

언덕을 내려오면서 생각했습니다.

제 서랍에도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세 번째 줄에서 멈춘 것들. 더 좋은 말이 떠오를 것 같아 미뤄둔 것들. 한 번도 열어보지 않은 폴더 하나.

대부분은 영영 이어지지 않을 겁니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서관을 다녀온 뒤로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끝내지 못한 것과 시작하지 않은 것은 다릅니다.

세 번째 줄까지는 갔던 겁니다. 그 세 줄은 실제로 존재합니다. 누군가 그걸 쓰는 동안에는 그 사람 안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안개가 걷히면 그 도서관은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들 흐린 날에만 찾아간다고요.

저는 다음에 갈 때 두 번째 서가에 갈 생각입니다.

더 좋은 말이 떠오를 것 같아서 멈춘 것들. 거기 제 것도 몇 개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아마, 오늘 쓴 이것도 언젠가 그 서가로 갈 겁니다.

리도 프로필

리도 인사이트

기술을 현장 언어로 다시 풀어 쓰는 사람

3D 설계, 광통신 인프라 장비 개발, 글로벌 현장 교육을 19년 넘게 다뤄왔고, 요즘은 AI 자동화, 꿈꾸는 카메라, 실무 채널 운영을 연결해 복잡한 일을 더 쉽게 만드는 방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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