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긴 쓰는데
도입 6개월 차 회의였습니다.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쓰긴 쓰는데, 일이 줄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메일 분류도 자동화했고, 보고서 초안도 AI가 뽑고, 회의록도 자동으로 정리됩니다. 개별 작업은 분명히 빨라졌습니다. 그런데 퇴근 시간은 그대로입니다.
원인은 대개 하나입니다. 일의 조각만 자동화하고, 일의 흐름은 그대로 뒀기 때문입니다.
자동화와 AX의 차이
두 단어가 섞여 쓰이지만, 다루는 대상이 다릅니다.
자동화는 작업(task)을 대상으로 합니다. "이 반복 작업을 사람이 하지 않게 만든다." 대상이 명확하고, 성공 여부도 명확합니다. 됐거나 안 됐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AX는 업무 흐름(workflow)을 대상으로 합니다. "이 일을 처음부터 다시 설계한다면, 어디까지 AI가 하고 어디서 사람이 판단해야 하는가." 대상이 흐릿하고, 성공 여부도 바로 안 보입니다.
같은 상황을 두 관점으로 놓아보면 차이가 분명해집니다.
문의 분류에 하루 1시간이 걸린다
이 문의들은 왜 들어오는가
AI로 분류를 자동화한다
반복되는 상위 3개 유형은 무엇인가
1시간이 5분이 된다
애초에 안 들어오게 만들 수 있는 건 몇 퍼센트인가
성공
분류 다음의 답변·처리·기록은 누가 하는가
AX 쪽 질문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 이 문의들은 왜 들어오는가
- 반복되는 문의 유형 상위 3개는 무엇인가
- 그중 애초에 안 들어오게 만들 수 있는 건 몇 퍼센트인가
- 분류 다음에 이어지는 답변·처리·기록은 누가 하는가
- 사람이 반드시 봐야 하는 문의는 어떤 조건인가
이 질문에 답하고 나면 결론이 달라집니다. "분류를 자동화하자"가 아니라 이렇게 됩니다.
작업 하나를 빠르게 만든 게 아니라, 일의 총량이 줄었습니다.
조각만 고치면 병목을 따라다니게 된다
병목은 옮겨 다닙니다
분류가 1시간에서 5분이 되면 병목은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분류된 문의에 답변을 쓰는 일이 새 병목이 됩니다. 조각만 개선하면 병목을 따라다니게 됩니다.
검수 비용은 숨어 있습니다
AI가 만든 초안을 사람이 확인하는 시간은 대개 계산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초안 작성 30분이 3분으로 줄었어도, 검수에 20분이 든다면 실제 절감은 7분입니다. 그리고 품질이 불안정하면 검수 시간이 원본 작성 시간보다 길어지는 구간이 존재합니다.
도구가 늘면 관리 대상이 늘어납니다
자동화 스크립트 15개가 각자 돌아가는 조직은, 그 15개가 언제 깨지는지 아무도 모르는 조직이기도 합니다. 어느 순간 자동화를 관리하는 것 자체가 일이 됩니다.
AX가 다루는 질문
AX는 결국 한 문장에서 시작합니다.
지금 이 일을, AI가 있다는 전제로 처음부터 다시 설계한다면 어떤 모양이어야 하는가.
기존 프로세스를 그대로 두고 그 위에 AI를 얹는 게 아닙니다. 프로세스 자체를 다시 그립니다. 그래서 AX는 도구 도입 프로젝트가 아니라 업무 재설계 프로젝트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자주 나오는 오해를 하나 짚고 갑니다. AX는 "사람을 줄이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잘 된 사례들의 공통점은 사람이 판단에 쓰는 시간의 비중이 올라간 것입니다. 정리·이관·기록·검색처럼 판단이 필요 없는 시간을 걷어내면, 같은 인원이 더 어려운 문제를 다룰 수 있게 됩니다.
어디서 시작해야 하는가
가장 흔한 실패 패턴은 "제일 눈에 띄는 반복 업무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업무가 조직에서 중요한 업무가 아닐 수 있습니다.
시작점을 고를 때 보는 것은 셋입니다.
자주 일어나는가
월 1회짜리는 아무리 귀찮아도 뒤로 미룹니다. 괴로움과 총량은 다릅니다.
틀렸을 때 되돌릴 수 있는가
되돌릴 수 없는 일부터 손대면 사고가 납니다.
판단과 반복이 구분되는가
섞여 있으면 설계가 어렵습니다.
셋을 만족하는 업무가 첫 대상입니다.
그런데 이 셋을 감으로 답하면 대개 틀립니다. 조직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생각보다 모릅니다. 다음 편에서는 그걸 지도로 그리는 이야기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