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기술서와 실제 하루
한 팀의 직무기술서를 펼쳐놓고, 같은 팀의 2주치 작업 기록을 옆에 놓았습니다.
겹치는 항목이 절반이 안 됐습니다.
AX 프로젝트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단계는 도구 선정도, 개발도 아닙니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단계입니다.
조직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모릅니다. 직무기술서에 적힌 일과 실제로 시간을 쓰는 일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도부터 그립니다.
업무 인벤토리 만들기
거창한 도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스프레드시트 한 장이면 됩니다. 다만 채우는 항목이 중요합니다.
표가 넓으면 좌우로 스크롤하여 확인하세요.
| 항목 | 왜 필요한가 |
|---|---|
| 업무명 | 식별용 |
| 빈도 | 하루 몇 번 / 주 몇 번 / 월 몇 번 |
| 1회 소요시간 | 실제 걸리는 시간 (체감 아님) |
| 담당 | 누가 하는가 |
| 입력 | 이 일을 시작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
| 출력 | 끝나면 무엇이 남는가 |
| 판단 지점 | 사람이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어디인가 |
| 실패 시 영향 | 틀리면 어떻게 되는가 |
앞의 다섯 항목은 대개 쉽게 채워집니다. 뒤의 세 항목이 핵심이고, 이걸 채우는 과정에서 조직이 몰랐던 게 드러납니다.
시간은 추정하지 말고 측정한다
"이거 한 30분 걸려요"라는 답은 거의 틀립니다. 사람은 자기가 쓰는 시간을 정확히 모릅니다. 짧게 말하는 경우도, 길게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2주 정도 실제로 기록하게 하면 숫자가 달라집니다. 30분이라던 일이 실제로는 12분이거나 1시간 20분입니다.
이 차이가 중요한 이유는, AX의 우선순위가 빈도 × 시간으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하루 8번 × 12분 = 96분짜리 업무가, 주 1회 × 2시간짜리 업무보다 우선입니다. 그런데 체감으로는 후자가 훨씬 괴롭게 느껴집니다. 감으로 정하면 순서가 뒤집힙니다.
판단과 반복을 분리한다
업무 지도의 핵심 작업입니다. 하나의 업무를 단계로 쪼개고, 각 단계가 판단인지 반복인지 표시합니다.
견적서 작성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 요청 메일에서 요구사항 추출 — 반복
- 유사 과거 견적 검색 — 반복
- 이 건에 어떤 단가를 적용할지 결정 — 판단
- 견적서 양식에 채워 넣기 — 반복
- 마진과 조건 최종 확인 — 판단
- 발송 및 기록 — 반복
6단계 중 판단은 2개뿐입니다. 나머지 4개는 넘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자동화가 안 되는 이유는 대개 3번과 5번이 문서화되어 있지 않아서입니다. 담당자 머릿속에만 있습니다.
여기서 AX 프로젝트의 절반이 결정됩니다. 판단 기준을 밖으로 꺼내 문서로 만들 수 있으면 진도가 나가고, 못 꺼내면 그 업무는 통째로 사람에게 남습니다.
판단 기준을 꺼내는 질문
담당자에게 "어떤 기준으로 정하세요?"라고 물으면 대부분 "상황 봐서요"라고 답합니다. 이건 답이 아니라 아직 언어화되지 않았다는 신호입니다.
이럴 때 효과적인 질문이 있습니다.
- 최근에 처리한 것 5건을 보여주세요. 각각 왜 그렇게 결정했나요
- 이 두 건은 조건이 비슷한데 왜 다르게 처리했나요
- 새로 온 사람이 이 판단을 틀리면, 보통 어디서 틀리나요
- 절대 하면 안 되는 선택은 무엇인가요
특히 마지막 질문이 유용합니다. "해도 되는 것"보다 "하면 안 되는 것"이 훨씬 명확하게 나옵니다. 그리고 AX 설계에서는 이 금지 조건이 더 중요합니다.
두 축이면 순서가 나온다
지도가 그려졌으면 순서를 정합니다. 축은 둘이면 충분합니다.
절감 크고 영향 높음
두 번째. 사람 확인 단계를 반드시 넣는다
절감 작고 영향 높음
건드리지 않는다. 손해가 이득보다 크다
절감 크고 영향 낮음
여기부터 시작한다
절감 작고 영향 낮음
나중에. 해도 티가 안 난다
오른쪽 위 칸을 명시적으로 비워두는 게 중요합니다. 안 하기로 정하는 것도 설계입니다. 이 칸이 없으면 언젠가 누군가 그 일을 자동화하자고 말하고, 아무도 반대할 근거를 갖지 못합니다.
이 단계에서 흔한 실수
전부 다 그리려는 것
조직 전체 업무를 다 인벤토리로 만들려다 3개월이 지나갑니다. 한 팀, 한 프로세스로 시작하세요. 지도는 완성되는 게 아니라 계속 갱신되는 것입니다.
담당자 없이 그리는 것
관리자만 모여서 그린 업무 지도는 대체로 실제와 다릅니다. 실제로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참여하지 않으면 판단 지점이 절대 나오지 않습니다.
도구를 먼저 정하는 것
"우리 n8n 쓸까요, Make 쓸까요"는 지도가 그려진 다음 질문입니다. 순서가 바뀌면 도구에 맞춰 업무를 왜곡하게 됩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렇게 나눈 판단 지점을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다룰지 봅니다.
지도는 무엇을 넘길지 알려줍니다. 그런데 넘긴 다음에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건 따로 설계해야 합니다.

